top of page

Tropical Madness.
열대광기

방송을 켜놓고 작업을 하다 보니 중간에 식사를 챙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늘 밥 대신 바나나를 챙겨 먹곤 했는데, 그마저도 종종 잊어버려서 책상 위에 한 송이 그대로 방치되기 일쑤였다.

어느 날, 고동색으로 완전히 변해버린 바나나를 먹고 있는 나를 본 시청자 한 분이 ‘오븐 없이 바나나빵 굽는 법’이라는 레시피를 보내주셨다. 분명 차근차근 따라 만들었는데, 내가 만든 바나나빵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마치 오래전에 버려진 소파의 썩은 스펀지를 뜯는 것 같은 맛이 났다. 그래서 미처 다 먹지 못한 바나나빵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밀폐용기에 담아 그대로 작업실에 보관했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작업실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내 작품들 사이로 유유히 지나가는 쥐 한 마리가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당시 작업실은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 있는 1층 건물이었는데, 주변에 식당도 많아 추운 겨울날 바깥의 쥐들이 보금자리로 삼기에 딱 좋았던 것이다.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시청자들은 그게 모두 바나나빵 때문이라고 놀렸고, ‘히더지가 만든 썩지 않는 바나나빵을 먹은 쥐가 바나나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세계관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만약 언젠가 현실에서 좀비 사태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온라인이 아닌 실제 세계에서 만나 함께 생존하자고, 시청자들과 장난처럼 약속을 나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관은 이후 시청자들을 관찰하는 작업의 배경이 되었다.

‘만약 실제로 좀비 사태가 일어난다면 함께 생존대를 결성해 팀에 합류할 의사가 확실한 사람’을 시청자 중에서 실시간 투표로 모집했고, 그 중 열두명을 인터뷰 했다. 추첨된 시청자들은 마치 자신이 스토리의 등장인물이 된 것처럼 상상하며 인터뷰에 응답했다. 그 결과 ‘솜사탕을 파는 사주 전문가’, ‘밥이 보약이라 외치는 민간요법 박사’, ‘연애를 글로 배운 기계공’, ‘공익 출신 밀리터리 덕후’ 같은 캐릭터들이 탄생했다.

「열대광기 Tropical Madness」는 ‘만약 좀비 사태가 일어난다면?’이라는 비현실적인 미래를 바탕으로, 시청자들과 나눴던 시간과 각자의 이야기가 뒤섞여 만들어진 세계다. 우리는 장난처럼 서로의 생존 팀을 꾸렸고, 사람들은 그 세계의 등장인물이 된 듯 자신만의 설정과 면모를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그때 남겨진 장면들은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세계와 태도가 스쳐 지나간 흔적에 가깝다.

참여자들이 드러낸 다양한 속성들은 단어나 그림만으로는 온전히 담기 어려웠다.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남해안 별신굿 이수자이자 작곡가 SAZA(이호윤)의 도움을 받아 각 작품마다 테마곡을 만들었다.  

Sig copy.png
Smile finger.png
bottom of page